본질을 잃지 않기

 
 
 


 
 
 

창업 자금 지원부터 멘토링 프로그램까지, 한국에는 창업자/예비창업자를 위한 정부지원사업들이 꽤나 있는 편이다.
나도 올해 초까지 부트캠프가 끝나고 난 후 내년에 그 사업에 선정되는 것이 목표였다. 그래서일까, 캠프가 끝나가는 요 며칠간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냈다.
'분명히' 지원사업들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인데,
왜 난 계속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?

여러가지로 들었던 생각과 조언은 아래와 같다.

첫 번째 이유는 시간과 에너지의 분산이다.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. 이 과정에서 '실제' 사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, 고객의 피드백을 받으며 사업 모델을 개선하는 데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길 수 있다. 또한 향후 선정되고 난 후엔 사업아이템을 큰 틀에서 피봇팅할 수 없다. 1년동안 그 사업이 괜찮아보이든 별로이든 그 아이템에 매몰되어야 한단 얘기다.

두 번째 이유는 본질에서 멀어짐이다. 지원사업에 집중하다 보니, 심사위원의 입맛과 그 해 지원사업의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사업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. 사업의 본질과 가치가 왜곡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. 사업의 방향성이 정부의 평가 기준에 맞춰지는 것은 결코 좋지 않은 신호다. 이 점은 창업자 단톡에서도 꾸준히 나오는 얘긴데, 결국 예창을 먼저 진행했던 친구들(주변 3명)도 스케일업을 포기하고 지금은 다 폐업한 상태다. 반대 케이스로는, 정부지원사업에 떨어지고 바로 창업하셨는데 창업 당해 매출이 n억 단위인 분이 계셨다.

 
 

지원사업으로 창업한 회사의 폐업률

 
 
 

세 번째 이유는 MVP라는 애매한 형태다. 정확히 말하자면 개발비에 대한 생각이다. 평균 4~5천만 원이라는 게 결코 작지 않은 돈이긴 하지만, 아주 간소한 MVP를 만드는데도 몇 천만원이 든다. 앱 부트캠프를 들어오기 전엔 '왜 이렇게 비싸?!'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지만, 지나고보니 그정도 스케일의 앱은 그정도의 값을 받는 게 맞았구나 생각하고 있다. 여기서 마케팅비까지 제하고 나면 남는게 없다. 무엇보다 부트캠프에서, 예창 단계에서 목표로 하는 MVP라는게 AI기술(이건 어차피 예창에서 못 만듦)같은 걸 제하고 나면 주니어 개발자들이 모여 만드는 최종프로젝트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됐다.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? 고객은? 매출은? 마켓핏 검증은? 초창패에서 스케일업하라는 데 이게 맞나. 정부지원사업의 심사위원분들 입맛에 맞춰 1년동안 MVP를 만들고 끝나는 것보단, 여러 아이템들을 빠르게 시장 검증해나가면서 반응 오는 데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고 빠른 방향이라 생각됐다.

 

물론 지원사업은 큰 도움이 될 것이고, 매우 좋은 사업이자 기회가 맞다. 그래서 당연히 나도 기회가 된다면 도전할 것이다. 하지만 사업의 본질과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. 뭐든지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. 본질은 정부나 스펙이 아닌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, 그 피드백을 반영해서 진짜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.

일단 그냥 고객과 매출을 만들자.
그게 1순위다.